1950년 9월15일 새벽 6시33분 함포사격 개시, 70년전 첫 승전고 전세역전
상륙작전 성공확률 5,000:1 비밀리 전개
[월미도(인천)=권병창 기자] 1950년 6.25전쟁 초기, 국군과 UN군은 북한군의 기습공격과 월등한 전투력에 밀려 급기야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를 거듭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의 주력을 견제하면서 후방을 격퇴하는 세기의 인천상륙작전에 돌입했다.
지금으로부터 70년전 UN군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美해병 제1사단, 한국군 제1연대를 진두지휘해 작전에 성공,'수훈갑'을 세웠다.
인천은 서울로 접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 항구였고, 북한군의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는 최적의 요충지였다.
뿐만아니라, 수도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적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다각적인 이점이 있었던 것으로 길이 구전된다.
'50년 9월15일 새벽 6시33분.
월미도 녹색해안(GREEN BEACH)의 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적색해안과 청색해안의 교두보를 확보한 뒤 인천시가지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마침내 9월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은 불리했던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며 세계 전쟁사의 한 획을 남겼다.
한편,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Douglas MacArthur)은 당시 UN군 병력지원의 한반도 상륙지점을 결정한 뒤 비밀작전을 전개, 쾌거를 이뤄냈다.
맥아더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의 지리적 약점은 물론, 성공확률 5,000:1이라는 불가능에도 상륙전을 감행, 마침내 위기를 역전시켰다.
때마침 상륙지점에서 만난 이복수(87.김포)씨는 "그 때가 열일곱살이었는데 멀리 보인 인천 앞바다는 군함들이 시커멓게 떠 있었다"며 "아직도 무섭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그 당시 함포 사격으로 인천시내는 불바다로 초토화가 됐었다"고 증언, 전시상황을 짐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