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100년 넘는 송림 병풍처럼 펼쳐진 국내 최고 석호

<유럽풍의 김일성 별장 전경/사진은 전시작 트리밍 >
<울창한 송림속에 자리한 김일성 별장>
<김일성 별장에서 11시 방향으로 조망한 북한 금강산 원경이 29일 오후 카메라 앵글에 포착됐다.>

6.25 남침이전까지 북한의 귀빈 휴양소로 운영
[화진포=권병창 기자]
 1950년 6·25 전쟁 이전인 '48년부터 김일성 가족이 뛰어난 경관의 ‘화진포의 성’을 여름휴양지 숙소로 애용하면서 '김일성 별장'이란 애칭(?)을 얻게됐다.

그러나, 전쟁 중에 훼손된 별장은 1964년도 재건축한데 이어, 1999년 이후 근현대의 안보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에 자리한 별장은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다.

선교사로서 당시 휴양지 이전에 대한 실행위원이었던 셔우드 홀(Sherwood Hall) 박사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해 온 독일인 베버(H.Weber)에게 조그마한 별장 하나를 바다에 인접한 암벽위에 짓게 요청했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베버는 1938년 회색돌로 지은 원통형 2층 건물을 현위치에 지었는데 마치 유럽의 작은 성(城)을 닮은 모습의 멋진 건축물이었다.

<김일성별장에서 바라본 금강산 자락이 먼발치로 시야에 들어온다.>
<소련군 제25군 정치사령관 리베데소장 아들과 함께 찍은 당시 김정일모습>
<김일성별장에서 눈을 들면 바로 보이는 1만 8천 야드의 동해 수평선>

그러나, 6.25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6년 5월, 본래 모습으로 복원, 지금에 이른다.

건축 당시 회색돌로 지어진 건물이 해안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세워져 유럽의 성을 재현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 졌다.

1948년부터 1950년 6.25 남침 이전까지 북한의 귀빈 휴양소로 운영됐다.

특히,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하계 휴양을 했던 곳으로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회자된다.

스위스 루체른 호수를 연상시킨 ‘화진포(花津浦)’는 동해와 연접해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광활한 호수 주위에 수령 100년이 훨씬 넘는 송림이 병풍처럼 펼쳐진 국내 최고의 석호이다.

해변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금구도(섬)가 절경을 이뤄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제 201호인 고니 등 멸종위기종 철새들이 기착, 겨울나기에 들어가며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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