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수안떠나 남으로 내려온 반세기의 삶 조명

봉두완 전앵커가 21일 오후 김포시 소재 애기봉 조강전망대 한 카페에서 어린시절 북한 해주 수안의 고향에 대해 술회를 하고 있다./사진=권병창 기자
봉두완 전앵커가 21일 오후 김포시 소재 애기봉 조강전망대 한 카페에서 어린시절 북한 해주 수안의 고향에 대해 술회를 하고 있다./사진=권병창 기자

소련군, 월경자 향해 따발총으로 사살해
봉두완 전 동양방송(TBC) 앵커와의 르포
[애기봉(김포)=권병창 기자]
손저으면 맞닿을 듯 지척에 있는 北개풍군 해물선전마을은 한폭의 풍경화가 연상되리 만치 조강건너 들녘은 봄향기로 무르익어 간다.

해발 156m 김포 애기봉(愛妓峰)아래 먼발치로 시야에 든 건너 협동농장 논에는 20여 명의 남녀가 못자리를 준비하는 등 일손마저 분주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한은 경색국면으로 치달으며 화해무드조차 사라진 북녘하늘은 박무만이 드리워져 있다.

올곧은 언론인의 길을 누벼오며 자유로운 영혼을 불지핀 봉두완 전앵커의 통일노래가 하루속히 이뤄지길 바라며, 실향민 1세대 주인공의 진솔한 후일담을 들어본다.  

바야흐르 3월 21일 춘분(春分, 황해도 해주 수안의 목가적인 고향 산천을 떠나 한평생 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삶의 지평을 펼쳐온 봉두완 퇴역기자를 만나 그의 진면목을 재조명 해본다.<편집자 주>

봉두완 전 앵커
봉두완 전 앵커

반백의 머릿결을 날리며 이제는 마스코트가 돼버린 방송인 그의 빨간 모자는 한눈에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미수(米壽)를 갓 넘긴 봉두완(88) 전 동양방송(TBC) 앵커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기백속에 자세마저 흐트러짐이 없다.

'손녀 바보'로 익히 알려진 그는 중후한 자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빨간 모자를 트레이드로 늘상 지닌다.

평소 자신을 ‘앵커맨’으로 기억해주기를 원한다는 그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신뢰를 얻었던 만큼 한센병 환우들의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에 참여, 반세기를 훨씬 넘겼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 당시 국민학교 5학년 즈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내원을 따라 황해도 해주를 떠나 평산-남천-배천-연안 쪽으로 남하해 내려온 것이 그만 되돌아갈 수 없는 망향의 길이 돼버렸다.

미수를 지난 풍체에도 별다른 건강에 문제가 없으리만치 여전히 목소리 톤은 예나 지금이나 쩌렁쩌렁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봉두완 전앵커는 남하할 당시 소련군이 38선 이북에 주둔한 반면, 세상 물정을 모른 자들이 월경하는 사람을 향해 따발총으로 사살했다고 상기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의용군으로 동료 친구들이 참전했는데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이 철수할 때 기관총에 인질로 두손이 묶인채 대부분 전사, 희생됐다며 분루를 삼켰다.

봉두완 전앵커가 유년시절의 어머니를 그리며 회상에 젖어 있다.
봉두완 전앵커가 유년시절의 어머니를 그리며 회상에 젖어 있다.

6.25 사변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수도는 부산으로 후퇴, 불가피하게 옮겨졌다고 전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는 부산의 임시 수도 가운데 영도를 무대로 학생들은 텐트를 치고 다니던 경복고교 학생들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휴전이후 54년에 미군도 계속 상륙하는데 미국 적십자사에서 사람이 나와 군인들한테도 적십자사의 숭고한 업무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그는 1954년 제1회 대한민국 청소년적십자의 1번으로 지정받은 뒤 먼훗날 대한적십자사의 부총재가 된다.

그 자격으로 꿈에도 그리던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바로 이산가족상봉단의 단장으로 평양을 다녀오는 운좋은 기회도 맛보았다.

100명을 인솔한 그는 적십자사와 연결이 된 것을 먼훗날 알게된 손녀가 스위스에서 외할머니를 졸라 자신의 용돈을 더해 할아버지 봉 앵커의 빨간모자를 선물로 받아 지금까지 애지중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의 모자는 전북 전주에 있는 모자박물관에서 기증을 요청해, 기꺼이 기부했다고 말했다.

봉두완 전앵커의 고등학교 때는 미국으로부터 초청받아 케네디대통령을 만났으며, 청소년 모임인 청우회 회장이 되기도 했다.

이날 봉 전앵커는 애기봉의 조강전망대 루프탑에 취재진의 즉흥 주문을 받은 뒤,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애기봉 조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온 국민이 외칩시다."라고 재연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를 선창한 그는 현장에서 ‘통일의 노래’를 합창, 통일기원의 분위기를 한층 이끌어 냈다.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