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없는 순수 민간단체, 과도한 통제 형평성 잃어"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사진=대한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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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추진 앞서 깊은 숙고와 폭넓은 논의 필요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없이 법안개정에 볼멘소리

[대한일보=권병창 기자]
자연재난 이재민 구호와 의연금품 관리 등을 규율하는 재해구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 소위에 이어 법사위 심의를 앞둬 귀추가 주목된다.

현행 재해구호법의 경우 행정안전부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대해 언제든지 사무검사를 실시하고, 법규 위반 시는 설립허가 취소마저 가능토록 하는 등 명문화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행안부는 시정명령을 통해 임직원에 대한 징계, 사업의 시정·정지 명령을 할 수 있다.

복지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각각 시정 요구만 가능하고 임원의 해임에 대해서만 명령할 수 있는 점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재해구호법이 개정될 경우 행안부는 협회가 임직원 징계, 사업정지 명령에 블응하거나 검사, 감사를 거부하거나 기피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행안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업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이 부과된다.

문제는 대한적십자사는 관련 조항이 전무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역시 검사나 감사를 거부할 시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는 조항 밖에 없다.

그러나, 일련의 개정안 규제와 벌칙 조항은 여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과 비교해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목소리다.

재해구호법은 각종 재해로부터 예기치 못한 재난을 당한 국민을 돕고 보살피는 중대한 법률 규정의 하나이다.

이를 둘러싼 관계자들은 관련 개정안 추진에 앞서 깊은 숙고와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데도 불구,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 없이 법안개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식(서울 강동구을)국회의원이 입법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연금품 관리·운영 절차 개선 △의연금 회계 분리 △의연금 모집비용 충당 구체화 △기본재산 변경 허가·조사·감사·시정명령 등 민간단체에 대한 지도감독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법안 내 관리·감독 강화와 공개의무 부여, 처벌 대상 확대, 사업관리 강화 등이 담겼다.

이는 정부의 아무런 지원없이 민간단체에 대한 회계부정이나 부당행위 등에 대한 미명아래 재갈 물리기식의 관리감독만이 뒤따른다는 확대 해석이다.

이 의원은 실제로 국정감사를 통해 전국재해구호협회의 경우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낮은 수위의 사무검사만 할 뿐 강력하게 감사를 할 권한이 없다고 제기, 논란을 빚고 있다.

게다가 한정애(서울 강서구병)의원은 ‘재해구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구호대상에 이재민이나 일시 대피자 외에 이들이 동반한 반려동물의 포함은 물론 구호기관은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임시 주거시설의 제공하도록 손질했다.

민주당의 최기상(서울 금천구)의원이 대표발의한 재해구호법 개정안은 재해구호기금 적립 주체를 시·도지사에서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으로 확대함으로써,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적립한 재해구호기금 집행을 통해 신속한 이재민 구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발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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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실정에 해당 재해구호협회와 모금기관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대목은 정부의 과도한 통제로 국민의 자발적 성금모금 및 사회공헌(CSR)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섞인 시선이다.

더욱이 협회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우려를 발생시킨' 임직원에 대해 경우에 따른 실정법에 의거, 그에 상응한 형사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우려를 발생시킨'이라는 애매 모호한 내용을 근거로 강도 높은 형사처벌 또한 가능하도록 개정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른 국민의 성금을 다루는 기관에 대한 굳이 정부의 관리·감독의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민간기구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통제와 장악의 당위성을 합리화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정상활동을 위축시키는 독소조항이란 지적이다.

관련 단체는 비정부기구(NGO) 특유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북돋으며 동시에 효율적인 관리·감독을 조화롭게 병행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뿐만아니라, 재해구호협회를 장악해 의연금을 정부 입맛에 맞춰 손쉽게 사용하려는 개연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른 후속 피해는 정작 재해 및 재난을 당한 현지의 이재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는 대목이 설득력을 더한다.

과거 1961년 전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사회단체가 모여 설립한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정부 보조금 없이 국민의 자발적 성금과 봉사만으로 우리 사회가 키워온 구호단체다.

물론 국민의 소중한 성금을 관리하는 만큼 공적인 의무와 유책사유에 따른 책임은 막중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대형 산불, 집중호우, 폭염 등 재난은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대형화, 복잡화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이같은 추이에 전국재해구호협회의 권오용부회장은 단순한 정부의 관리·통제 강화를 넘어 새로운 재난양상에 대응할 방안을 찾기 위해 국회, 정부, 재해구호협회, 학계와 민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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