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가 을사늑약을 전후해 독일은행에 맡긴 비자금 규모가 100만 마르크(재경부 추정 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고종의 독일비자금은 약 50만 마르크로 일제가 모두 빼앗아 간 것으로 알려졌었다.

   정상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27일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관련 외교문서의 복사본(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을 판독한 결과, 고종이 1903-1906년 독일은행에 맡긴 비자금이 당초 알려진 50만마르크보다 많은 100만마르크라고 밝혔다.

   정 교수에 따르면 고종은 지난 1903년 중국 상하이 덕화(德華)은행을 통해 독일 디스콘토 게젤샤프트은행(훗날 도이체방크에 병합)에 이 비자금을 맡기기 시작했으며 일본은 1908년 독일정부의 확인을 거쳐 51만8천800마르크를 압수했다.

   하지만 일본이 독일로부터 압수한 고종의 비자금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독일정부가 일본에게 거짓 확인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콘라드 폰 잘데른 주한독일공사가 1907년 2월5일 뮐베르크 독일 외교부 차관에게 보낸 친필보고서를 그 근거로 들었다.

   이 보고서에는 "1903년 말 황제(고종)가 내게 사람을 보내 독일에 돈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100만마르크가 넘었다...그 돈의 절반을 (일본에 보내지 말고) 확보했으면 한다. 그 돈을 황제가 보내는 정당한 사절에게 주기를 한국인들도 원할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실제로 그로부터 9일 후인 2월14일 독일 외교부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당신의 후임인 나이 영사가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편지를 잘데른 공사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정 교수는 이와 관련, "고종은 크레벨(독일)이라는 대위를 통해 당시 독일의 식민지였던 중국의 칭다오에 12만마르크를 들여 땅을 구입하는 등 독일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며 "잘데른 공사와도 개인적으로 대단히 돈독한 관계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외교문서에 나온 바로는 대한제국 국고 유가증권이란 이름으로 예치된 계좌에 고종의 비자금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 이 계좌가 남아 있는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재경부 관계자도 "채권소멸시효, 국제법관례, 독일민법 등을 검토해 봐야한다. 채권여부 확인도 아직 규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야 할 것"이라고 전제 한 후 "우리도 이에 대한 국제관계 및 법 문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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